아이카츠 플래닛! 본편 감상 2. 신데렐라와 마법이 풀리는 순간

✿ 2021년 02월 18일 완성, 타 플랫폼에 게시했던 내용에 추가적인 해석을 덧붙인 글입니다.
✿ 주의

아이카츠 플래닛! 본편 스포일러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과 다소 과대하고 세밀할 수 있는 해석

이 포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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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데렐라와 마법이 풀리는 순간

 

1967년 샤를 페로가 창작한 동화 《신데렐라》는 새어머니와 언니들에게 구박받던 마음씨 착한 재투성이가 요정의 도움을 받아 무도회에 참석하고 왕자와 춤을 추지만 자정에 마법이 풀리기 시작하자 무도회장을 황급히 떠나며, 왕자는 신데렐라가 떨어뜨린 구두를 단서로 그녀를 찾아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카츠 플래닛! 5화에서 아이돌들이 오디션을 보았던 부분은 왕자와 신데렐라가 춤을 추다가 밤 열두 시 종이 쳐 왕자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입니다. 그렇다면 플래닛에 왜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는 장면'이 등장한 것인지 궁금해질 법합니다.

 

 

먼저, 페로 판본의 신데렐라는 요정의 마법으로 무도회장에 갈 수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는데, 이 마법은 곧 현실 세계에서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인 아바타를 입고 플래닛 세계로 들어가는 '미러 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타고난 외양이 변화한 것은 아니지만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갈 수 있게 되길 바랐으므로 신데렐라에서의 '무도회에 참석할 수 있는 모습'과 플래닛에서의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동일시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요정의 도움으로 화려해진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 도착했을 때 계모와 두 언니는 신데렐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왕자 또한 신데렐라의 집을 찾아갔을 때 누더기를 입고 집안일을 하는 신데렐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외부인이 변화한 신데렐라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판본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신데렐라 원전을 모티프로 한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에서는 유리 구두 소재가 사라졌으나, 화려해진 신데렐라의 모습을 남자 주인공이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그대로 연출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플래닛에서 하나의 내면이 '메이사'에서 '마오'로 변했음에도 타인이 손쉽게 하나의 변화를 알아보지 못했던 점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때, 유일하게 하나의 정체에 의심을 품은 큐피트가 신데렐라 오디션에서 신데렐라로 낙점되었음은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신데렐라는 단순히 아름다운 외양으로만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고, 그 마음이 요정을 감화시켜 마법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으며 결론적으로 왕자와의 결혼 또한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신데렐라는 보통 착한 마음씨를 가질 것에 대한 교훈을 주는 동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플래닛과 신데렐라의 연관성은 단순히 '착한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널리 알려진 페로 판본의 신데렐라는 착한 마음을 가진 신데렐라가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신데렐라 판본은 동일한 원형을 지닌 채 수백 가지로 분화되어 전승됐습니다. 그러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가진 공통성 중 하나가 바로 '한쪽 구두를 잃어버린 신데렐라'인데요, 신화나 동화에서 한쪽 신발만 가진 자를 '모노산달로스'라고 부르곤 합니다. 모노산달로스 원형은 통상 '이분법적 시각을 넘어 세계를 통합적으로 보는 주인공 양상, 반쪽 진실에만 눈을 뜬 상태에서 진실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즉, 신데렐라의 모노산달로스적 특성은 현실과 플래닛이라는 이중적인 세계 속에서 현실의 '나'도 플래닛의 '아바타'도 모두 자기 자신임을 깨달아가는 플래닛의 인물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상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데렐라 오디션에서 아이돌들이 '모두' 신데렐라였던 이유입니다. 모두가 신데렐라로서 무대에 설 가치를 가지는 존재들이었고, 모두가 세계의 진실을 찾아 모험하며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표현해낸 것입니다.

 

 

페로 판본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요정은 신데렐라가 착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에 그녀를 도와줍니다. 즉, 마법이 실현되는 데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플래닛에서는 그 조건이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마오-하나의 경우에는 뛰어난 드레시아 교감 능력과 도전 정신이 손꼽힙니다. 드레시아 교감 능력은 마오 안에 본질적으로 내재해 있던 성격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즈미 씨가 알아본 마오의 잠재력과도 상통합니다. 작 초반 마오-하나는 막 아이돌을 시작한 포지션이었지만 드레시아 포인트만큼은 다른 아이돌들보다 높게 획득하는 양상을 보여 줍니다. 20화의 루리비트 대결에서 드레시아 포인트가 더 높았던 루리가 퍼포먼스 포인트가 더 높은 비트를 이겼다는 점이나,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통상의 절차에 따라 드레시아 체인지에 성공한 로즈를 무대 전 드레시아와 직접 교감하고 배틀 중 드레시업을 해낸 하나가 이겼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드레시아와의 교감능력은 플래닛 내에서 상당히 주요한 능력이며 배틀 스테이지 결과를 좌우하는 요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오-하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마법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었고, 그녀는 마법의 문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페로 판본이 아닌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동물들이 직접적으로 신데렐라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마오-하나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드레시아 타입이 페어리 타입이라는 사실, 키 드레시아가 그리스 신화에서 성스러운 동물의 상징성을 지닌 페가수스라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하지만 5화 신데렐라 영화 오디션에서 신데렐라 주인공 역으로 캐스팅된 것은 하나가 아니라 큐피트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플래닛은 동화를 차용하고 있으나 동화 속 주인공이 단 한 사람이라는 동화의 보편 문법을 완전히 부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기반하여 하나와 시오리의 관계성을 해석할 때 좀 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플래닛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차용하였으나 플래닛 속 신데렐라(주인공)를 단 한 사람으로 정해 두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모노산달로스 원형과 플래닛의 이원적 세계가 상징성을 공유한다는 점을 보아도, 5화는 먼저 플래닛 속의 모두가 신데렐라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원전이라 불리는 페로 판본의 신데렐라를 가장 닮은 사람은 큐피트였습니다. 신데렐라는 고난과 역경이 닥쳐옴에도 외부의 원인을 탓하거나 적극적으로 외부 세계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에서 견디고 노력하는 인내심의 소유자입니다. 큐피트 또한 자신을 흔드는 요인이 외부(대부분 히나타 메이사)에 있음에도 혹독한 훈련을 포함한 노력을 통해 스스로 한 발짝 더 나아감으로써 문제를 극복하려 하지요. 13화에서 아유미는 스쳐 지나듯 메이사를 발견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혹독히 훈련합니다. 메이사가 돌아왔는데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한몫했겠지요. 그리고 14화에서는 메이사가 정말로 돌아왔음이 밝혀지자 성장한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플래닛 마라톤에 참여하고 극한의 마라톤을 완주하며, 함께 마라톤을 완주한 비트와의 배틀에서 승리합니다. 큐피트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내적 갈등을 자기 극복을 통해 승화시키는 인물로, 인내하고 때를 기다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신데렐라 캐릭터와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큐피트가 신데렐라 오디션에서 선택받았음은 큐피트의 신 속성, 우주 속성과 메이사와의 관계성과도 연관지어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그림 형제 판본의 신데렐라에서는 신데렐라가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에게 개암나무 나뭇가지를 꺾어와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신데렐라는 이 가지를 심어서 나무로 키우게 되는데요, 개암나무는 고대 켈트 신화에서 우주의 나무이자 신의 나무였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신목이 개암나무였지요. 이는 큐피트 메인 에피소드가 되는 6화의 제목이 '퍼펙트한 신님'이라는 사실과 큐피트가 평소 신에 가까운, 완벽한 존재로 여겨졌음과 연결됩니다. 동시에 이후 큐피트가 드레시업을 통해 사지타리우스 밀키웨이를 얻음으로써 보다 넓은 우주를 포괄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큐피트를 자극하고 성장시키는 존재인 메이사-로즈가 드레시업으로 얻은 드레시아가 로제 위그드라실, 세계수라는 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신데렐라가 된 큐피트는 이후 자신의 목표이자 라이벌인 메이사가 하나로부터 떠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나가는 사람'인 모노산달로스임을 고려했을 때 이는 큐피트의 개인적 성숙과는 별개로 그녀가 다른 차원의 '반쪽을 잃어버리는 양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모노산달로스가 자아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원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신데렐라가 된 큐피트가 부르는 노래가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가사의 플라잉 팁스라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플래닛의 신데렐라 서사는 단순히 누가 신데렐라가 되느냐 하는 것만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각 인물들이 신데렐라를 연기하는 모습에 각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곧 '무도회장에서의 신데렐라'는 모든 아바타들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루리의 경우 특유의 친화력과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을 무도회장에서도 보여줍니다. 왕자와 춤을 추지만 루리가 왕자를 리드하며, 이별 또한 깔끔하고 명쾌합니다. 밝고 발랄한 루리 특유의 웃음도 한가득 보여 줍니다. 루리는 평소의 루리다움이 드러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곧 플래닛이 루리에게는 자신다움을 유지하면서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좀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라 성장할 수 있는 장소임을 나타낸다고 보았습니다. 즉, 루리 내면에 있는 루리만의 잠재력이나 특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플래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트는 왕자와 함께 춤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무를 춥니다.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왕자 앞에서 비트만의 춤을 추고, 비트만의 웃음을 짓고 이별을 고합니다. 이는 곧 비트가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싶은 갈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비트의 자유로운 춤이 평소 플래닛에서의 모습을 억누르고 있던 우메코우지 쿄코의 바람을 그대로 보여주는 요소로도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무도회에서 반드시 남성과 여성이 짝이 되어 춤을 추지 않아도 괜찮다, 무도회는 춤을 추기 위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아닌가 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데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바꾸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쿄코의 생각이 반영된 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해보자면, 루리와 비트의 연기는 왕자와의 이별을 아쉬워한다기보다는 즐거웠던 시간에 이별을 고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해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곧 아이카츠 플래닛이라는 세상에 대한 루리와 비트의 자유로운 시선을 은유한 것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특기인 발레 동작을 선보이며, 열두 시 종이 쳐도 더 춤추고 싶다는 마음에 무도회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왕자와 춤을 춥니다. 플래닛은 결국 정해진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 각자의 신데렐라를 보여 주었고, 하나는 심지어 각본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지만 그것이 신데렐라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플래닛이라는 작품이 추구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 개척자 신데렐라였지요. 하나의 신데렐라는 모두의 신데렐라 중 가장 개성 있는 신데렐라라고 볼 수 있었고, 그런 점이 나타리 감독의 마음에 찼던 것이니까요. 나타리 감독의 신데렐라 영화 자체가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플래닛이 추구하려는 신데렐라가 대중이 생각하는 '정답에 가까운' 신데렐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애초부터 암시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애초에 나타리 감독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페로의 원작을 각색한 내용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서 그만 계속 춤춰 버린 하나를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 원래 하나였던 메이사 또한 무언가에 집중하면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유사성 덕분에 하나가 메이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크게 의심받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신데렐라 부분에서 주목해보아야 하는 사실은, 하나의 신데렐라가 이미 같은 감독의 전작인 아이카츠! 의 삽입곡 《Passion Flower》에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아이카츠! 삽입곡 《Passion Flower》 가사 일부

 

《Passion Flower》의 가사에는 감독이 추구하는 '주인공 신데렐라'가 '아침까지 춤추고 싶어하는' 신데렐라임이 드러납니다.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꺾이지 않는 자신감과 굳센 마음을 가진 신데렐라, 그리고 왕자와의 결말을 상관하지 않고 아침까지 춤추고 싶어하는 신데렐라. 《Passion Flower》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노래지만 왕자가 등장하지는 않지요.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첫눈에 반해 왕자를 사랑하게 된 신데렐라' 이야기가 디즈니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원작 신데렐라에서 왕자는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선망의 존재로 나타남과 동시에 신분 상승의 매개로 읽히곤 하며, 왕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세 번의 만남에 걸쳐 그려집니다. 그런 면에서 《Passion Flower》는 온전히 '신데렐라만의' 이야기입니다. 무도회에서 끝없이 춤추고픈,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 더 빛나고픈 신데렐라의 이야기지요. 따라서 우리는 무인편부터 플래닛까지 아이카츠가 이야기하는 '공주'는 독립적이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그리고 자신을 더욱더 빛내고 싶다는 이상을 가진 모험가와도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Passion Flower》의 가사에는 하나가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춤추며 피워냈던' 가슴 속의 꽃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날 흘렸던 눈물이 / 빛으로 변해서 무지개를 띄울 거야' 부분은 플래닛의 주제곡 《HAPPY∞アイカツ!》의 가사 '오늘 흘린 눈물이 / 프리즘처럼 / 봐, 눈부시게 반사되어 /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는 것만 같아'와 닮아 있지요. 따라서 5화는 신데렐라 동화의 이별 서사에 충실하면서도 그 내면에 플래닛만의 가치관을 담음으로써 이야기를 비틀어버리는 역할을 큐피트에게 부여하고, 감독이 추구하고자 하는 신데렐라 역할을 하나에게 부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큐피트는 연기하는 모든 시간을 이별 장면을 묘사하는 데 사용합니다. 다른 캐릭터들이 무도회의 특성을 고려하여 춤을 추는 것으로 연기를 시작한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모든 시간을 이별 묘사에 사용했다는 점은 곧 큐피트가 '마법이 풀리는 순간'을 맞이한 플래닛 속 아바타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큐피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생의 츠키시로 아유미는, 현실에서도 아이돌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도전을 좇는 인물로 그려지지요. 더불어 큐피트는 대사 없이 행동만으로 이별의 장면을 표현해내는 역량을 지녔고 그를 살려 이별 장면을 멋지게 해석해냈습니다.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자유로운 해석은 플래닛의 가치관을 표방하고 있으며 큐피트가 눈물을 흘리며 주저하는 모습은 누구나 이별에 머뭇거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이별이란 단순히 극중 왕자와 공주의 헤어짐이라기보다는, 마법이 풀리는 순간을 은유한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플래닛은 되고 싶은 내가 되게 해 주는 공간이지만, 평생 플래닛에서 아바타를 입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플래닛과의 이별은 필연적이므로 각 인물들이 이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곧 그들의 성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5화 기준으로는 안이 거의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라 안의 연기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6화에서 안은 큐피트의 말을 모두 따라 적으며 아이돌에 대해 공부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며 귀여워 보이는 것을 중시하지만 아이돌로서의 철칙을 지키며 행동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따라서 안의 경우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연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안의 평소 모습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데렐라의 이별 장면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 큐피트와 안 두 사람뿐이라는 데에서 안이 큐피트를 보고 큐피트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마냥 큐피트를 따라하는 것은 아니지만 큐피트를 우상으로 삼고 그녀를 가장 가까이서 언제나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레 '큐피트처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연기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안은 큐피트를 무작정 모방하지 않습니다. 다만 큐피트라는 이상을 통해서 그 이상과 동등한 위치에 도달한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갈 뿐입니다. 큐피트는 스스로를 귀엽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스위츠를 굽지도 않고, 누군가를 대놓고 동경하며 애정을 보이지도 않습니다. 즉 안은 큐피트를 동경하여 그녀의 일부를 닮아가기도 하지만 분명 안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큐피트의 신데렐라에 나타나는 내재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카츠 플래닛! 2탄에 등장하는 'Magical Door' 덕택입니다. 매지컬 도어는 '마법의 문'이라는 뜻으로, '종소리'로 노래가 시작되면서 5화에 등장했던 '신데렐라'와의 연관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비한 문을 열어 보면 마녀가 혼자서 미소짓지 되고 싶은 것으로 변신하는 마법 걸어 줄 수 있어, 라고'라는 가사를 보면 신데렐라가 바라는 무도회에 갈 수 있게끔 해 준 요정이 떠오릅니다. 플래닛에서 '되고 싶은 모습'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인물들의 모습 또한 연상되지요. 그러나 이 마법이 과연 '신데렐라'에서 끝이 날지가 관건입니다. 매지컬 도어에 등장한 것은 요정이 아니라 마녀. '되고 싶은 모습으로 변하게 해 주는 것'이라 하면 신데렐라의 요정뿐만 아니라 대가를 필요로 하는 '인어공주' 속의 마녀, 그리고 백설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갈망하고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그녀를 해치려 했던 '백설공주' 속의 계모 또한 떠올리게 합니다. 'Magical Door'는 이렇게 수많은 동화의 갈망과 욕망을 집약하여 드러내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작품이 진행되는 중 새로이 아이돌의 세계에 입문하여 자신만의 아바타를 직접 만들어낸 시오리의 데뷔곡이 되는 것은, 신데렐라 오디션에는 등장하지 못했던 시오리가 열어갈 새로운 아이돌 세계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오리가 박식하고 한 분야에 궁금증을 느끼면 해결될 때까지 파고들어가는 성격을 가진 점 또한, 그녀가 플래닛 세계의 열쇠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위 구절의 다음 가사인 '다양한 형태가 있으니 각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경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가사가 플래닛 속에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되어 마음껏 춤출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플래닛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고난과 역경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면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독자적이고 다양하니 플래닛과 현실을, 또 플래닛에서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다르다는 점까지 시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독창적이고 다양한 신데렐라의 모습을 보여 준 인물들과 원작에서는 호박마차가 되었을 뿐인 생쥐를 하나의 캐릭터로 구현해내는 감독의 창의성까지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플래닛이 일종의 '마법'이라고 해서 플래닛과 현실을 완전히 양분하여 플래닛에서 마법이 풀리는 것을 현실에서의 깨달음으로 귀결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메이사는 스스로 플래닛이라는 마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갔지만 결국 새로운 이상과 목표를 찾아 플래닛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는 곧 플래닛이 현실의 나,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성장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이상을 꿈꾸게 해 주는 공간임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플래닛은 끊임없이 현실을 움직입니다. 플래닛에서의 변화는 현실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현실의 변화 또한 플래닛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겠죠. 따라서 현실과 플래닛은 '정답이 정해져 있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카츠 플래닛을 보면서 플래닛 프린세스 그랑프리는 왜 '프린세스'의 이름을 표방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오래 읽히는 수많은 동화 속에 '공주'라는 존재가 등장하며 그 공주가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고 진짜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것이 자라나는 여자아이들에게 그리고 동화를 읽으며 자라난 여성들에게 성장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카츠 플래닛은 자라나는 여자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카츠 시리즈를 보고 자라난 여성들에게 말합니다. 공주들은, 프린세스는 되고 싶은 내가 되어 멋지게 무대에 설 수 있는 '나'의 모습이라고. 공주들은 우정과 사랑과 용기와 희망으로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고픈 모습을 찾아 '마법의 문'을 열 수 있다고. 그를 위해서라면 왕자와의 이별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자아이들이 공주를 부정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왕도 왕자도 다른 무엇도 아닌 프린세스, 그 자체로 당당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카츠 플래닛에서 '프린세스'는, 주인공의 또다른 이름이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