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카츠 플래닛! 본편 감상 3. 거울 나라의 앨리스

✿ 2021년 03월 13일 완성, 타 플랫폼에 게시했던 내용에 추가적인 해석을 덧붙인 글입니다.
✿ 주의

아이카츠 플래닛! 본편 스포일러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과 다소 과대하고 세밀할 수 있는 해석

이 포함된 글입니다.

---

3. 거울 나라의 앨리스

 

아이카츠 플래닛! 을 보면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처음 감상을 쓰게 된 것은 아케이드 2탄 가동 당시 공개되었던 사라의 키 드레시아 실루엣이 나비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사라의 타입명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시절인데요, 사라의 타입 아이콘인 손거울과 나비의 상관성을 고민해보았지만 짚이는 데가 없었고, 딱 한 가지 떠오른 것이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거울 나라 곤충들이었습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챕터 3 제목이 「Looking-Glass Insects」거든요. 그리고 실사 영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를 거울 나라로 이끄는 것이 나비라는 점도 신경이 쓰였죠. 그래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아이카츠 플래닛에 닮은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의 타입뿐만 아니라 메루리루리 편 연극 인물들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 등장인물들을 모티프로 만든 배역이라는 점이나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체스판 모험 이야기인데 매지컬 도어가 체스판을 닮은 무대 디자인으로 꾸며졌고 비트 오라 병뚜껑이 체스판 무늬라는 것, 아케이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린세스 그랑프리 의상이 화이트, 블랙의 체스말을 본뜬 듯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앨리스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지요. 게다가 시오리가 동경하는 동화의 인물이 앨리스였고 결국 시오리는 시오리만의 앨리스를 플래닛에서 찾게 되니, 결국 플래닛은 앨리스가 존재하는 공간이 됩니다. 원더랜드 테일이 '모험은 이제부터야, 앨리스.'라고 이야기했으니 플래닛의 이야기는 다음 모험의 공간인 '거울 나라'로 이어지겠지요.

 

애초에 '거울 나라'를 만든 것이 일본이라는 점도 거울 나라의 상상력이 플래닛에 반영됐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원제는 '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으로 '거울 너머에서 앨리스가 찾은 것'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 '鏡の国のアリス(거울 나라의 앨리스)'로, 한국 번역이 일본 번역서를 따랐기 때문에 한국인들 또한 '거울 나라'라는 용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지요. (물론 앨리스가 거울을 통해서 또 한 번 신비한 나라를 방문한 것은 사실이므로 그곳을 '거울 나라'라고 칭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체스 게임의 규칙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며, 폰으로 모험을 시작한 앨리스가 마지막에 여왕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화입니다. 플롯 자체가 앨리스의 움직임에 따라 앨리스가 폰에서 여왕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마지막에는 폰이었던 앨리스가 퀸이 되는 결말을 맞이하지요. 먼저, 아이카츠 플래닛! 에 등장하는 '플래닛' 세계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체스게임'의 '말'입니다. 즉, '체스판 위에서 움직이는 앨리스의 세계'와 앨리스가 움직이고 있는 체스판으로 체스를 두고 있는 '외부 세계'가 이분되어 나타납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트위들 형제는 앨리스에게 '레드 킹'이 꿈을 꾸고 있으며 앨리스는 '레드 킹'의 꿈 속에 있으므로 '레드 킹'이 꿈에서 깨어나면 앨리스는 사라져버린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울 나라에서의 앨리스의 모험이 앨리스의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그 꿈이 또다른 누군가의 꿈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카츠 플래닛! 에서 거울 나라라는 꿈 속에서 체스 말이 되어 움직이는 것은 플래닛 세계의 아바타이며, 그 아바타를 말 삼아 체스를 두는 꿈을 꾸는 것은 현실 세계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카츠 플래닛! 이 표방하는 것은 다름아닌 '꿈 같지만 꿈이 아닌' 세계이므로, 애니에서 중첩되어 등장하는 꿈들은 '그 모든 것이 꿈과도 같지만 사실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시사하며 캐릭터들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물론 본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와 '레드 킹'은 개별 존재로 등장하여 이 중첩된 꿈 구조는 앨리스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곤 합니다. 트위들 형제의 말에 따르면 거울 나라 모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꿈을 꾸고 있는 '레드 킹'의 시선입니다. 하지만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마지막까지 이 모험 이야기가 누구의 꿈인지 명료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어느 쪽이 진짜였을 것 같니?"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맺습니다. 그리고 '레드 킹'이라는 인물이 진짜 꿈을 꾸고 있는지, 그가 꿈에서 깨었는지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지요. 그래서 아이카츠 플래닛! 이 계승한 「거울 나라의 앨리스」플롯의 목적성은, 마지막에 제시된 "어느 쪽이 진짜였을 것 같니?"라는 질문에 '두 가지 모두 진짜 나 자신'이라는 답변을 내놓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8화 이전까지 비트는 '우메코우지 쿄코'가 '비트'라는 사실을 숨기고 아이돌 활동을 하지요. 비트와 쿄코는 거의 정반대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고, 8화에서 인터뷰 담당자도 쿄코가 비트라는 사실에 놀랍니다. 쿄코 자신조차도 비트일 때 벽을 세우며 눈치보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비트가 쿄코임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가진 '꿈(비트)'과 '현실(쿄코)'이 서로 다른 종류나 층위의 것이 아닌 '모두 진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는 곧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가진 하나의 가능성을 재현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카츠 플래닛! 은 루이스 캐럴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그대로 이어받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캐럴은 아이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으로 들어갔을 때'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거울 속'이라는 말은 상당히 중의적입니다. '거울 밖'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거울 속의 나'라고 할 수도 있고, '거울 밖'의 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상태를 '거울 속의 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캐럴은 아이들을 거울 속으로 데려갔을 때 흥미로운 결과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인편 아이카츠! 에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캐릭터의 내면과 속성을 나타내었고 '거울 속의 나'를 일시적으로 현실에 불러내는 구조를 취했다면 아이카츠 플래닛! 에서는 그것을 넘어 캐릭터가 직접 거울 속으로 들어가 모험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키무라 류이치가 아이카츠! - 아이카츠 플래닛! 두 작품의 감독을 맡은 것을 생각하면, 그에게 아이카츠! 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이카츠 플래닛! 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가 되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플래닛 내에서 이미 '원더랜드 테일'이라는 드레시아로 완성된 채 등장하는 것이지요.

 

 

서사에 쓰인 세부적인 장치들 또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킵니다. 시오리가 플래닛에 대한 동경을 표현한 춤추는 메루리루리 편의 연극에서 시오리의 동경인 하나가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 역할을 맡았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한 사실입니다. (연극에서는 후추 여왕으로 등장하지만, 붉은색 옷에서 하얀색 옷으로 변하는 대조적 모습, 하나가 플래닛에서는 톱 아이돌이라는 것, 실사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스토리와 인물들이 섞여 등장 - 에서 붉은 여왕이 악역이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앨리스 이야기의 비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가 여왕으로 등장한 것은 하나가 '아직 폰에 불과한 앨리스'인 시오리의 목표가 되는 인물(퀸)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시오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가 기르는 고양이 키티였고 하얀 여왕도 마찬가지로 앨리스가 기르는 고양이 스노우드롭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여왕들은 거울 나라 안에서는 앨리스가 도달해야 할 지점이지만 동시에 그 지점이 앨리스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의미 또한 내재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작중에서 비밀 공간으로 마오 일행을 초대하여 다과 시간을 가지게끔 하는 쿄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파티의 중심이었던 모자 장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더불어 4화에 등장하는 쿄코와 비트가 찻잔을 드는 손이 서로 반대(쿄코가 왼손, 비트가 오른손)라는 점은 플래닛이 거울 세계임을 재차 확인시킵니다. 이때 쿄코의 비밀 공간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질감, 일종의 '이상한 나라', '엉뚱한 모자 장수의 파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쿄코비트가 앨리스-여왕인 하나와의 배틀에서 부른 곡이 '키라리 파티 타임'뿐이라는 점 또한 그런 특성을 강조한다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요.

(플래닛이 인간이 만든 새로운 가상 공간이라는 것도 앨리스와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가상 현실 테크놀로지 시험을 위해 가장 먼저 만들어진 초기 프로그램 중 하나가 앨리스 이야기에 등장하는 엉뚱한 모자 장수의 파티를 토대로 한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가상 현실을 통해서 앨리스의 티파티에 참여하면서 기술 테스트를 진행한 것입니다. 따라서 앨리스 세계와 플래닛은 기술 역사적으로도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화에서 쿄코를 따라 '이상한 나라(비밀 공간)'로 들어가는 마오와 시오리. 계단을 타고 아래쪽으로 하강하는 모습이 마치 앨리스가 땅굴로 미끄러지며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모양과 닮았지요. (계단으로의 하강은 무의식 속으로의 진입,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의미하곤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모두 플래닛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처음 마주한 '폰으로서의 앨리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오는 '하나'를 통해 아이돌이 되고, 큐피트와의 배틀에서 승리하며 드레스 체인지를 해내는 등 아이돌로서의 관문을 하나둘 넘어섭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하트 여왕과 크로케 경기를 통해 일종의 경쟁을 하는데, 경쟁의 결론이 명확하게 나지 않은 채 앨리스의 모험은 끝나고 맙니다. 이는 원더랜드 테일이 말한 '모험은 이제부터야, 앨리스!'라는 대사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며, 큐피트와의 배틀에서 완전한 결론을 맺지 않고 떠난 메이사-하나나 10화 이전 시점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배틀에 임하고 있는 마오-하나 모두 '거울 나라'의 모험을 떠나야 함을 암시합니다.

 

이미 '거울 나라'가 되어버린 플래닛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미 선행되어 있는 세계'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어릴 적 마오가 시오리에게 앨리스의 배턴을 한 번 넘겼기 때문에, 마오가 이미 선행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세계의 앨리스, 그리고 시오리가 플래닛 본편 현시점 이어지고 있는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플래닛에 발을 들인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마오에게는 발레로 다져진 기본기와 어느 정도의 드레시아 친화력이 존재했으며 무엇보다 마오의 아바타는 톱 아이돌으로 활동해왔던 '하나'입니다. 즉, 마오-하나는 거울 나라의 체스판에서 퀸의 위치에 가까운 상태지만 시오리는 완전한 폰에서 여정을 시작하는 앨리스인 것입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왕과 알파벳 게임을 하게 되는데, 이 게임은 A부터 Z까지 해당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정해진 게임 양식 안에 넣어서 말을 완성시키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앨리스는 '나는 H로 시작되는 내 연인을 사랑해요.'라고 말하지요. 여기에서는 모자 장수였던 '하타(Hatta)'와 3월 토끼였던 '헤이어(Haigha)'에 관해 말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H라는 알파벳으로 게임을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는 절묘하게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기억하는 앨리스가 거울 나라에서 이상한 나라의 흔적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오리가 원더랜드 테일과 스토리 드레시아의 숲을 발견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시오리의 또다른 동경이 하나(Hana)라는 점에서 알파벳 게임의 H로 시작하는 대상에 Hana를 넣어도 이상하지 않음을 느끼게 합니다. 이 알파벳 게임의 전문은 '나는 H로 시작하는 내 연인을 사랑해요. 왜냐하면 그는 _____니까요. 나는 그를 미워해요. 왜냐하면 그는 _____ 니까요. 그는 나를 _____ 의 자리로 데려갔어요. 그리고 나를 _____ 처럼 대접해 주었죠. 그의 이름은 _____ 이에요. 그는 _____ 에 살지요.'입니다. 알파벳을 전부 H로 완벽히 맞추기는 어렵겠지만, 시오리 내면에는 하나를 '질투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존재했을 것이라는 점, 시오리가 모자 장수의 티타임으로 상징되는 '비밀의 공간 티파티'에 가게 된 근본적 계기가 마오-하나에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얼추 들어맞는 구성입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나는 H로 시작하는 내 연인을 사랑해요. 왜냐하면 그는 행복(happy)하니까요."라고 말했던 것도, 플래닛의 주제곡 'HAPPY ∞ 아이카츠!'를 연상시켰습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체스가 시작될 때, 유니콘(페어리 타입 드레시아)은 하얀 여왕의 나이트이며 사자(홀로스코프 타입 드레시아)는 붉은 여왕의 나이트입니다. 그리고 장미(플라워 타입 드레시아)는 붉은 여왕 측 폰. 즉, 시작점에서는 장미(메이사-로즈)만이 여왕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거울 나라의 앨리스」는 체스 게임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동시에 체스의 규칙을 변형시키고 깨기도 합니다. 게임의 규칙에 종속되지 않으며 규칙을 변주하고 전복시키는 것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스 게임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나이트'였던 하나와 큐피트 또한 충분히 '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요.

 

 

각 진영에는 각각의 여왕이 존재하는데, 7화의 메루리루리 연극에 따르면 (앞서 한 번 언급했듯) '붉은 여왕'도, '하얀 여왕'도 둘 다 '하나'로 묘사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바타이자 아이돌인 '하나'가 지금까지는 단 한 사람의 인물이 아니라 '메이사-하나', '마오-하나' 둘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역할이 붉은 여왕에서 하얀 여왕으로 바뀌었으니 메이사인 하나는 붉은 여왕, 그리고 마오인 하나는 하얀 여왕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죠. 따라서 붉은 여왕이 하얀 여왕이 되는 것은 메이사에게서 마오로 하나의 역할이 넘어옴을 상징하고, 그 배턴 터치가 이루어짐으로써 체스판에서 마오-하나는 하얀 여왕으로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하나가 '붉은 여왕'에서 '하얀 여왕으로 변하는 모습이 하나가 현실 세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변한 직후와 동일한 포즈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꿈 밖의 존재가 꿈 속으로 들어와 앨리스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하고, 또 앨리스가 새로운 '역할'인 여왕이 되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여러 번 정체성의 자각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여왕이라는 껍데기(이름)만 남겨둔 메이사는 장미(로즈)로서 다시 폰(체스판 끝까지 가면 여왕이 될 수 있는 존재)이 되어 움직일 수 있게 되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병정들은 본래 붉은 장미를 심어야 하는데 하얀 장미를 잘못 심어서 장미를 붉은색으로 칠하고 있었습니다. 병정들은 하트 여왕이 하얀 장미를 심은 것을 알면 자신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 또한 메이사가 본래 '하나'로 활동해왔지만 여왕이 될 '하나'는 아니었다는 점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이사가 '하나'로 활동하던 것은 본편 시점보다 앞선 이야기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죠.) '하나'는 메이사가 직접 만든 아바타가 아니기 때문에, 메이사-하나는 사실상 '꽃의 형태'만 갖추고 있던 하얀 장미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메이사는 '붉은 장미'를 지향하여 '로즈'라는 아바타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로즈의 키 드레시아는 두 색이 섞인 분홍 장미인 것. 마오-하나의 경우 플래닛이라는 거울 나라를 모험함으로써, 하얀 장미로 표상되는 하나라는 아바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모두의 마음에 꽃을 피우는' 일종의 행위이자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마오-하나의 지향성이며 마오가 이해하고 확립한 '하나'라는 존재의 증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