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복선의 효과적인 활용법》 : 「사랑받는 언니가 사라진 세계」 (나유혜 장편 로맨스 판타지소설, 연담)를 읽고

 

《상징과 복선의 효과적인 활용법》

 : 「사랑받는 언니가 사라진 세계」 (나유혜 장편 로맨스 판타지소설, 연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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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1) 저자: 나유혜

2) 출판사: 연담

3) 연재처: 카카오페이지
4) 연재 기간: 2020.04.10. ~ 2020.07.08. 본편
2022.12.20. ~ 2023.01.05. 외전
5) 미디어믹스: 2022.12.19. ~ 웹툰 연재 중(현재 시즌 2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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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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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회귀 후 주인공 시에나가 대공 저에 왔을 때, 석류를 함께 먹는 것은 시에나를 가문의 아이로 인정하는 일련의 양식이었으며, 이는 신화의 페르세포네를 상기시킨다. 서사 전개가 신화적 상징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원형의 전형성을 전복시키는 시도로서 기능한다. 지하 세계의 메타포인 ‘지저의 나흐트’에서 싹이 틀 수 있다는 묘사와, 그것이 주인공 시에나의 ‘봄의 정원’ 형성으로 연결됨은 정통의 저승을 뒤집고 만물을 자라게 만드는 페르세포네의 원형성이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작중 나흐트 대공의 죽음이 다소 급박하게 등장하였고 장치적인 경향이 있었음에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탄탄한 복선 덕택이었다. 시에나가 열두 살 때 나흐트의 장서각에서 마주했던 『손톱 먹은 쥐』 이야기가 마수의 자기 보존 방식과 연관되어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점도 유의미하다. 작품의 초반부에 등장한 복선이 후반부에서 회수되었으며 다른 화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스토리라인을 형성했다. 복선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의미다.

아쉬웠던 부분은 회귀한 주인공 시에나에게 주어진 힘이 초장부터 너무나 거대하여 전체 서사에 일종의 한계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흐트의 주요 인물들이 전생을 기억하게 만들어 감정적 갈등의 파장을 극대화함으로써 작품의 한계를 상쇄한다. 만약 나흐트의 주요 인물들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전생과 현생의 나흐트들 간 괴리가 상당해져 갈등은 해소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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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개국 공신으로 불리는 세 가문은 창천의 유로스, 창해의 페라토, 지저의 나흐트. 유로스와 페라토는 각각 영공과 영해를, 나흐트는 영토를 수호했다. 주인공 시에나를 후원하는 것은 지저(地底)의 나흐트 가문이며, 나흐트의 문장에는 석류가 들어간다. 회귀 후 시에나가 대공 저에 왔을 때, 대공은 직접 쪼갠 석류를 그녀에게 건넨다. 석류를 함께 먹는 것은 시에나를 나흐트 가문의 아이로 인정하는 일련의 양식이었으며,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석류를 먹었을 때 가문의 일원으로 복속되는 과정은 성스러움을 넘어 다소 기괴하기까지 하다. 먹는 곳은 약속의 장소이며, 함께 먹는 것은 상대와 끈질기게 얽히는 것이다.

 

그러한 서사 전개가 신화적 상징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원형의 전형성을 전복시키는 시도로서 기능한다. 지하 세계의 메타포인 ‘지저의 나흐트’에서 싹이 틀 수 있다는 묘사와, 그것이 주인공 시에나의 ‘봄의 정원’ 형성으로 연결됨은 정통의 저승 원형을 뒤집고 만물을 자라게 만드는 페르세포네의 원형성이 서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나흐트 성은 저승의 표상으로, 시에나가 한 차례 죽었다 살아나는 공간이며 원치 않게 신변을 귀속시키는 장소다. 여기까지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판본에 따라 페르세포네가 능동적으로 석류를 먹었다는 내용도 있지만, 석류 먹기가 가지는 의미와 인물에게 부여된 권력 구도는 동일하다.) 그러나 시에나는 회귀함으로써 이전 생과는 달리 나흐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정화의 힘을 가진 ‘테라포머’로서 나흐트 저를 정화하며 살아가게 된다.

 

작중에서 나흐트 대공이 결계를 치다가 사망한 사건은 누군가 손 쓸 틈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공의 죽음이 다소 급박하게 등장하였고 장치적인 경향이 있었음에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은 탄탄한 복선 덕택이었다. 시에나는 대공 로드릭 나흐트에게 호신부를 건네며 그에게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음을 보여 준다. 그녀는 대공도 곧 자신의 ‘정원’(테라포머가 형성할 수 있는 일종의 아공간)에 초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흐트 성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그 장면은 대공이 ‘살아서는’ 시에나의 정원에 결코 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복선이 되었고, 이후 대공의 장례식은 시에나의 계획 아래 봄의 정원에서 이루어진다. 그곳에 묻혀 영영 잠드는 방식으로 시에나의 정원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또한, 본편 마지막 회차에 대공의 장례식 에피소드를, 외전 마지막 회차에 대공의 이름을 물려받은 시에나의 아들 로드릭이 봄의 정원에서 할아버지의 영혼을 마주하는 에피소드를 배치함으로써 구조적 완결성을 형성했다. 이외에도 시에나가 열두 살 때 나흐트의 장서각에서 마주했던 『손톱 먹은 쥐』 이야기가 마수의 자기 보존 방식과 연관되어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점도 유의미하다. 작품의 초반부에 등장한 복선이 후반부에서 회수되었으며 다른 화소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스토리라인을 형성했다. 복선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의미다.

 

아쉬웠던 점은 회귀한 주인공 시에나에게 주어진 힘이 초장부터 너무나 거대하여 전체 서사에 일종의 한계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시에나는 회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에 열두 개밖에 없는 무기 ‘네임드’의 선택을 받은 아이로 거듭난다. 이전 생에서는 누구도 주인으로 선택하지 않았고 결국 악역 로레이나의 손에 파괴된 네임드, ‘헤사로스’에게 선택받은 것이다. 시에나는 한순간에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었으나, 본질적으로 평민 고아 출신이었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 과정에서 시에나가 가진 네임드의 권력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생긴다. 제국에 몇 없는 능력자임이 검증되었고, 3대 가문 중 하나인 나흐트가 보증하는 아이인데도 그녀를 면전에서 무시하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초장부터 주어진 힘은 시에나를 제국에서 손꼽는 능력자로 성장하게 만든다. 덕택에 시에나는 최종 흑막이었던 최상급 마수를 손쉽게 무찌른다. 이전 생의 시에나가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후에 나흐트 가문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이처럼 주인공이 먼치킨에 가까운 속성을 가지게 되면서 많은 일들이 각각의 무게에 비해 쉽게 해소되었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이러한 지점을 상쇄하여 「사랑받는 언니가 사라진 세계」의 작품성을 끌어올렸던 요소는 바로 나흐트의 주요 인물들이 전생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감정적 갈등의 파장을 극대화했다는 사실이다. 이전 생의 아시엘 나흐트는 자신이 사술에 빠져 시에나를 사랑한 만큼 그를 증오하고 경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심장을 담보로 시간을 되돌린다. 그리고 시에나 회귀 후, 아시엘에게 시에나는 심장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린 장본인이 아시엘이었으므로 아시엘은 시에나의 시간 축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자연히 깊어진다. 그리고 아시엘은 시에나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서 절대 생색을 내지 않았고 변명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시에나의 곁을 지킨다. 전생의 자신 탓에 시에나가 고통받았음을 알기에, 지금의 그는 시에나에게 냉대받고 이용당해도 괜찮다는 태도다. 만약 나흐트의 주요 인물들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전생과 현생의 나흐트들 간 괴리가 상당해져 갈등은 해소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생의 시에나에게 지독한 고통을 준 존재들이 ‘아직 그러한 행동을 하기 전’의 상태가 유지된다면, 그녀는 누구에게도 사과받을 수 없으나 해결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했을 테니까.